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위한 5단계

Posted 2008/04/30 11:41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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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의 80% 이상이 원래 계획했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계획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프로젝트 일정이 늘어지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프로젝트 전체를 통째로 망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은 또 어떠할까요? 지금까지 배워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꼭 그렇게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수없이 좌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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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구나 100% 만족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없을 것입니다. 애널리스트나 아키텍트 입장에서 성공했다고 판단한 프로젝트라고 해도 개발자나 테스터 입장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현업이나 고객 입장에서 본다면 성공의 기준은 더 모호해질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기술’보다 ‘사람’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 때문에 늘어나는 것은 담배와 술 그리고 몸무게뿐이라는 자조 섞인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소통(커뮤니케이션)이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MBOK Guide에서는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프로젝트 정보의 시의적절한 생성, 수집, 보급, 저장, 최종 분배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나는 그 순간까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PM Network 99년 8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위한 5가지 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5단계가 시간 소비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누구나 활용 가능한 훌륭한 툴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1. 집중해서 들어라
2. 명확하게 생각하라
3. 자유롭게 토론하라
4. 감수성을 개발하라
5. 요구사항에 신속히 응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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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변증법 - 현대 사회의 야만성

Posted 2008/04/04 10:45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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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개념과 문화들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핑크빛일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 정체성은 과연 존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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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이란 신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즉, 중세 어둠의 세계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빛의 세계인 근대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몽이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져든다고 지적했는데,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문화 산업의 야만성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문화가 자본주의의 논리와 결합되어 대다수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획일화시킨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컴퓨터 환경, 특히 PC 환경에서 이와 같은 계몽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습니다. 8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발자와 사용자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가 금지됐고, 동시에 IBM 호환 PC에 MS-DOS가 탑재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일반 사용자가 컴퓨터에 쉽게 접근하면서부터) 계몽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32비트와 GUI 그리고 인터넷 사용을 위한 자체 통신 기능을 내장한 윈도 운영체제의 등장과 이후 운영체제 시장에서 확대된 윈도의 독점적 지위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계몽의 화룡정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는 새로운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은밀한 형태의 야만성을 띄면서 인간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신화화되어 나타나고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세뇌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이 틀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나만의 것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나만의 것일까요? 그들이 즐기는 문화가 과연 스스로 창조한 문화일까요? 아니면 온갖 매체를 통해 신화화되어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이 마치 나만의 것처럼 느껴지는 문화는 아닐까요?

90년대 중반 이후 윈도 운영체제가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어떤 분은 “빌 게이츠가 마련해 준 선물에 만족하다가 어느 순간 그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린 사용자로서 스스로 무력함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윈도를 필적할 만한 강력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세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계몽의 변증법』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유다 너의 생명이건 재산이건 계속 네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이후 너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될 것이다”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셈입니다.

컴퓨터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이방인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무능력에 빠지거나 더 나아가 정신적인 무력증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혹은 타협점을 찾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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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개인에 가하는 폭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이방인'(알베르 카뮈 작품)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을 했다는 것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했다는 사실에 더 비난을 받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존 사회의 틀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늘 '새로운 것', '참신한 것', '기발한 것'을 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적인 형태에서만 가능합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이란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라는 메타 시스템 속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바람은 문화라는 상품이 어떤 식으로 제작하여 포장하고,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워 선보여야 할 것인가? 이것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가를 다시 분석하여 재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순환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제반의 모든 것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합니다(생산의 수단이고 소비의 수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체성'이란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앞서 인용한 말처럼 이 시대의 주인은 육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대신 곧바로 영혼을 공략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암흑시대인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계몽의 변증법'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계몽을 빙자한 광기의 시대(나치즘, 파시즘 같은)를 '부정'과 '비판'을 통해 보여줬지만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in Experience Elegy Project)

<사진 설명>
1965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막스 호르크하이머 (앞쪽 왼편), 테오도어 아도르노 (앞쪽 오른편), 위르겐 하버마스(뒷쪽 오른편) -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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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스택(Stack) 시대의 단상

Posted 2008/03/28 16:19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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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트렌드 및 전망 관련 몇몇 리포트를 보면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SW 스택(Stack) 전략입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IT 컨버전스가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SW 분야에서도 점차 시스템의 복잡성을 줄이고, SW의 설치 위험과 비용을 낮추기 위해 SW 스택 전략이 거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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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스택 전략이란 운영체제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 미들웨어,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SW 전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제품군을 갖추고 이들 제품간 융합을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고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근래 몇 년 동안 IBM, MS, 오라클 등 대형 글로벌 SW 벤더들이 여러 SW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면서 SW 스택 전략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SW 스택의 장점은 이렇습니다. 고객 비즈니스와 최적으로 결합되는 다양한 기술요소가 화학적으로 융합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기에 성능, 관리, 통합을 위한 불필요한 투자와 노력 축소되고,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시스템 통합 비용 절감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운영관리의 효율성 높여 궁극적으로 TCO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Best of Breed 시대

IT Convergence 시대

IT기술 제공 방식

SI기업 주도의 시스템통합 서비스 제공

SW 스택을 통한 토탈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제공

기술과 비즈니스의 우선성

선택된 기술요소에 맞춰 시스템 최적성 좌우

비즈니스 목표에 맞춰 최적으로 융합된 기술요소 적용

기술 통합의 성격

기술요소의 물리적 연계통합

기술요소의 화학적 융합

고객의

신기술 적용 시점

해외에서 선적용 후 (외국계) SW벤더 통해 국내로 확산시  적용 가능

자사 비즈니스와 최적으로 결합되는 솔루션을 다양한 원천기술 기반으로 먼저구현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력에 미치는 결과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경쟁업체보다 늦게 신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시장 후발자 입장에 서게 되어 시장장악 힘듦

최신 표준기술을 채택한 최적의 솔루션을 경쟁업체보다  먼저 적용해 time-to-market 실현 가능

TCO 절감 관련

별도의 높은 통합비용과 위험 감수 불구, 유지비용 지속적으로 증가

단기적으로 SW제품간 통합비용 부담 해소, 장기적으로 운영, 유지보수 비용 절감

 

아무튼 앞서 언급했듯이 SW 스택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인 것만은 분명한데, 사실 우리네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몇몇 대형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특정 분야에서 잘 나가는 SW 기업들을 싹슬이 하다 보니 SW 기업 경쟁력의 양극화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국내 SW 산업의 현실을 살펴볼까요? 국내 SW 시장 규모는 전 세계 시장 대비 1% 불구합니다.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1/10 수준이지요. 그나마 그것도 외국계 기업의 점유율이 80% 이상입니다. 패키지 SW 경우에도 세계 100대 기업 중 국내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고 연 매출이 10억 이하인 업체가 국내 SW 기업의 70%가 넘는 등 아직 국내 SW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한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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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SW 스택 전략처럼 몇몇 대형 글로벌 기업의 영향력만이 더욱 확대되는 이와 같은 흐름은 국내 SW 산업의 발전이나 국내 SW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티맥스소프트가 운영체제 기술 및 CRM, ERP 등 애플리케이션 제품들을 발표하면서 개방형 SW 스택전략을 펼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글로벌 대형 SW 벤더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SW 스택을 갖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마케팅이나 영업 등 기타 다른 역량들은 차치하더라고 최소한의 SW 스택을 위한 기술력과 제품군을 갖춰야 글로벌 경쟁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안 그런다면 향후 도태되어 망하거나, 인수합병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SW 시장은 초기 선점이 어렵지만 규모의 경제 및 네트워크 효과가 매우 강해 시장 점유가 확대될 수록이 이익이 급증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국내 SW 산업의 국가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한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들 강조하고 있지요. 정말 SW 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위기의식만을 느껴서만 될 문제가 아니겠지요.

 

정말 향후에 IBM, 오라클, MS 3개사가 국내는 물론 전세계 SW 시장 100% 석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정말 단지 우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SAP MS IBM이 인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이 나오니 말입니다.

 

몇몇 SW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하는 국내 SW 기업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규모가 큰 운영체제나 데이터베이스 등의 분야는 여전히 외국 업체이지만 말입니다.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하는 분야가 국내 SW 기업에서 나오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위기감이나 패배주의 같은 절망감보단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가지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in Experience Elegy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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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black fat hairy pus 2008/05/24 01:41 Delete Reply

    위치에 그것을 중대한 일은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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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개발자가 필요한 이유

Posted 2008/03/26 18:37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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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모 IT 업체의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차 미국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특히 설렜던 것은 이바 야콥슨, 짐 럼버와 더불어 소프트웨어 공학계의 3대 거목이자 UML 개발을 주도했던 그래디 부치를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개발자도 아닌 제가 경외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는데, 실제 개발자라면 어떤 심정일까 궁금했는데 당시 같이 갔던 한 개발자의 굉장히 들떠 있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그레디 부치 외에도 국내 개발자들이 존경하는, 일명 스타 개발자들은 대부분은 외국 사람들입니다. 객체지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케이, 자바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든 제임스 고슬링,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이끄는 리차드 스톨만, 리눅스라는 운영체제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지요.

반면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요? V3라는 백신을 만든 안철수, 국내 최초의 TP-모니터 티맥스를 만든 박대연, 워드프로세스 아래아한글을 만든 이찬진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외에 마땅히 스타 개발자라고 언급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참 힘듭니다. 국내 SW 산업의 열악한 환경만큼이나 스타 개발자들의 존재 또한 희박하지요. 게다가 근래 10년 동안 새로운 스타 개발자가 나오지도 않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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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개발자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많은 후배 개발자들에게 개발자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롤 모델(Role Model)'인 셈이지요. 그들의 일생을 보면서“나 또한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그들처럼 될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획기적이고 경쟁력 있는 SW 기술과 개념을 창조해 내는 힘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오랜 세월동안 축척해 온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SW 산업에서 이런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많은 스타 개발자가 나오고, 그들의 노하우가 후배 개발자들에게 잘 전달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겠지요.

SW 개발자 양성을 위해 그동안 여러 제도적 장치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개발자 개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스타 개발자의 존재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개발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끈기’와 ‘창의력’을 말합니다. 끈기란 체력과 집중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경우 인내심을 갖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이며, 창의력이란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끈기와 창의력은 단순히 학교나 학원의 교육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제대로 된 개발자 한 명을 양성하는 것이 획기적인 기술 하나를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오히려 전자가 더 어렵고 드물 수 있지 않을까요? 국내에서도 앞서 언급한 앨런 케이, 제임스 고슬링, 리차드 스톨만, 리눅스 토발즈 등과 같은 수십 년의 노하우를 지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스타 개발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많은 미래의 스타 개발자를 위한 초석이 되길 바라고요.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는 개발자 문화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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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이론과 웹2.0

Posted 2008/03/18 09:51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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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미드(미국드라마) 중에 ‘X-파일’이란 것이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전 시즌을 다 본 유일한 미드이기도 합니다). 이 미드는 FBI 요원인 주인공 멀더가 어린 시절 자신의 여동생이 외계인에 납치된 것이 정부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동료인 스컬리와 함께 그 음모를 파헤치면서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이렇게 X-파일에 나오는 외계인의 존재나 지구 식민화 정책 등과 같은 거대한 음모이론은 영화 '컨스피러시(원제 자체가 '음모이론'이다)'에 와서는 우리 실생활에 더 밀접하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제리(멜 깁슨)는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음모이론에 관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음모이론은 단순히 미드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실제로 이전에 한 설문조사를 보니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어떤 종류이든) 음모이론을 믿는다고 답변했더군요.

로스웰사건, 케네디 암살 그리고 최근의 9.11 테러까지 그 배후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정부는 무언가 밝힐 수 없는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각종 정치적인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실체적인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각종 음모만 난무한 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진실에는 관심 없고 이런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에만 여념이 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음모이론이 생기는 이유는 정보의 공유가 자유롭지 못하고 특정인 혹은 집단이 그것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보소통의 불균형, 다시 말해 정보를 가진 쪽과 이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 사이에서 음모이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음모이론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음모론이 음모론을 낳고, 이렇게 음모론만 판치게 되면 정작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진실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마치 음모이론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음모이론은 대부분 그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듭니다).

또한 음모이론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 상당히 모호할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다 해도 '아님 말고'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뜬금없이 음모이론을 언급한 이유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보의 공유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 집단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쓰여야 된다는 점이죠.

웹2.0에 대해 말하면서 항상 뒤 따라오는 키워드가 ‘참여, 공유, 개방’입니다. 오픈API, 매쉬업,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등 웹2.0을 위한 다양한 기술이나 서비스들도 결국 정보의 자유롭고 발전적 유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일 것입니다.

거창하고 머리 아픈 철학적 담론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웹2.0 시대란 ‘끊임없는 진실의 추구’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용자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자유란 GNU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구속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를 말하며, 이러한 '자유의 보장이 결국 인류의 공존과 공영에 보다 근접한 실용적인 이상주의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끔은 웹2.0 혹은 다가 올 또 다른 IT 패러다임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in Experience Elegy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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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스러운 한글유튜브 - 음란물 방치하지 말아야

Posted 2008/01/24 17:10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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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IT 관련 뉴스를 살펴보니 한글유튜브 사이트의 공식적인 오픈 및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스트브 첸 유튜브 공동창업자겸 CTO 말을 인용해 한글유투브는 단순한 영문사이트의 한글화가 아닌 진정한 현지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국내 사용자들 입맛에 맞게 하기 위해 국내 7개 업체와 제휴를 맺고 한글유투브를 통해 해당 콘텐츠를 제공한다고도 합니다. 또한 구글코리아 사장은 한글유튜브을 통해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감도 밝혔네요.


한글유튜브가 오픈했다는 소식에 과연 국내 UCC 업체들의 반응들은 어떨까 궁금했는데요.개인적으로 크게 걱정되거나 우려스러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구글코리아가 생긴 이래 이미 한글유투브 오픈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으니 말이죠(사실 예정보다 좀 늦어졌죠). 또한 구글코리아가 아직까지 국내 검색시장 점유율이 1.4% 불과하니 한글유투브도 시작이야 거창하게 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글이든 유튜브든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전개해 나갈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한글유투브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이트를 살펴보다 보니 구글코리아에 한글유튜브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채널 쪽을 살펴보다가 몇몇 댓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성인사이트에서 볼 법한 하드코어류의 음란물이 쎔네일 형태로 버젓이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리고 문제는 이것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됐다는 것입니다(제가 확인한 게 아침 9시쯤이고 점심 전후에도 계속 있었으니 말이죠). 구글코리아에서 과연 제대로 조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기술적으로 제가 잘 모르겠지만 썸네일 자체를 자동적으로 필터링할 수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참고로 화면 캡처한 것을 증거 자료로 올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수위가 너무 높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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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글에서 검색된 개인정보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고객이 구글코리아에 항의를 했더니 본사로 직접 연락하라는 답변을 들어 황당해 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구글이나 유튜브가 한국에서 성공을 하든 안하든 개인적으로 상관은 없지만 이와 같이 음란물이나 개인정보유출 문제에서 만큼은 좀 심각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즈니스도 좋지만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조카가 한글유투브에 안 들어갔기를 바라면서 보낸 하루였습니다. (in Experience Elegy Project)

* 글을 다 쓰고 살펴보니 조인스닷컴에 사진과 더불어 관련 기사가 떴네요.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1/24/30519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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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elegy 2008/01/24 23:57 Delete Reply

    한글유튜브가 제휴한 국내 업체는 7개가 아니라 9개입니다. 또한 글에 오탈자와 어색한 문장이 좀 있는데요 이 모든 부분을 다시 교정한 것을 제 메인 블로그(ielegy.tistory.com)에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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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4) - 미래를 직접 만들자

Posted 2008/01/18 11:19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이글은 블로터닷넷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개발자분은 지난 컴퓨팅 역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웹의 출현과 같은 사건은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의 연장을 기반으로 한 예측은 항상 틀렸다. 상황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격렬한 경쟁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어느 정도의 낙관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객체지향의 아버지이자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스몰토크’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든 앨런 케이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말이지 않나요? 가끔 아는 개발자분들을 만나 개발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꼭 이 말을 언급하곤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돼 있다면 개인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겠죠. 만일 개발자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개발해야 한다면, 이와 같이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결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부터 개발자에겐 “자유”가 주워집니다. 이것은 축복 받은 선물이면서도 반대로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개발자의 자유는 늘 상충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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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넘어 미래를 직접 만드는 개발자’란 무엇일까요?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그것은 바로 자유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개발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현실적인 결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오래 전부터 한국 개발자의 정년이 35세라고 회자되는 것은 단지 정신적이나 체력적 한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왜곡된 국내 개발 현실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부조리한 감수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개발자들은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더 이상 개발자로 남지 않고, 보다 안정적인 관리자의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개발자로 남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결하면서도 드물기 마련입니다.

만약 생계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내부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지하철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평소에 만원인 지하철에 늘 불만이었던 승객들이 어느 날 그 지하철 회사의 주식을 사게 되면서 지하철이 만원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 지하철의 승객들은 수동적인 노예 상태였지만 지금은 주인으로서 능동적인 상태로 전환됐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그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개발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냅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습니다.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고, 여기서부터 인류의 불행이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판도라 상자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불행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로서 살아가는 이유와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신화의 한토막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이라는 주제로 4회에 걸쳐 여러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단상’의 사전적 의미처럼 정말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을 풀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개발자로서 삶을 살아야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물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은 한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백 마디 말이나 주장보다 개발자 각자가 찾은 답을 갖고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개발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봤던 짧은 경구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하지 않는 소중한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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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elegy 2008/01/18 16:03 Delete Reply

    제 메인 블로그(ielegy.tistory.com)에 이번 연재에 대한 몇가지 오탈자 및 문장을 고친 수정본을 업데이트 했습니다.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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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3) - 거인의 어깨 위에 서다

Posted 2008/01/15 10:19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이글은 블로터닷넷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2) - 행복한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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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쓰면서 어쩌면 한국 개발자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 IT 환경에서, 특히 SI 중심의 SW 환경에서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을 본다면 ‘노예’라고 표현한 것이 결코 틀린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그들은 항상 주요 의사결정에 배제되어 왔고, 처우나 대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며, 새롭게 포장된 기술에 허덕이면서 도대체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고 겪으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드뭅니다. 예를 들어 한때 IT 개발자들이 연합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지는 못한 듯 했고, 개발자 커뮤니티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소수의 몇몇이 애를 쓰고 있지만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개발자나 IT 업계의 약자를 위한 시민단체와 같은 이익단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자들 스스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사판에 속한 막노동자로 자신을 비약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이전에 어느 개발자 블로그에 올라온 카툰을 본적이 있습니다. 새벽 노동시장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고용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드럼통에 불을 째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바 2명!”이라고 외치는 모습입니다. 이 한 컷의 카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조리한 현실보다 이러한 현실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버려는 두는,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상황. 그것이 현실보다 더한 개발자의 슬픔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한편에서는 실력 없이 대우만 잘 받으려는 개발자와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가 없는 개발자도 의외로 많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역량을 키우는 일임에도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개발자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단지 돈 때문에 일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갖고 있고, 그 역량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삶의 기쁨은 그 역량이 커지는 느낌이고 슬픔은 그 역량이 작아지는 느낌이다"라며, "창조란 무엇보다도 '기쁜 삶의 창조'이다. 그리고 창조는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개발자로서의 기쁜 삶을 위해 어떤 식이로든 자기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속박하는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단순하게 코딩만을 하는 테크니컬 노동자가 아닌 자유롭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창조자로서 개발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들뢰즈가 말한 기쁨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기쁜 삶'을 영위해 나가고 또한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또 다른 기쁜 삶을 창조할 때가 바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한 유명한 개발자 한 분은 몇 날 며칠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어느 순간 해결했을 때 가슴 속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주체할 수 희열 때문에 동네를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유레카'를 외치면서 로마 시내를 벌거벗고 뛰었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지요.

물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Java를 만든 제임스 고슬링은 어느 강연에서 한 참석자가 "Java를 배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는 당신이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Java를 개발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매일 같이 느끼는 새롭고 놀랄만한 기술들은 사실 기존에 정립한 개념과 기술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편리한 환경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행운아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튼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혜택 받은 자임을 생각해야 하고, 그 어깨가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창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그렇다고 쉽다거나 만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거인의 어깨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개발자로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여는 열쇠는 찾는 자의 몫이다. 미래의 키 메이커는 바로 나이자 동시에 우리입니다.

* 글을 다 쓴 후 포스팅하기 직전 서두에 언급한 ‘노예’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결코 현재의 개발자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 아닙니다. 단지 이번 글을 쓰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떠올라 그 개념을 좀 차용해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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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rkddn112 2008/01/16 10:19 Delete Reply

    공감합니다.
    꾸준한 자기개발과 자기만족이 개발자의 기본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하다보면 따라올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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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2) - 행복한 프로메테우스

Posted 2008/01/11 15:53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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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글에서는 개발자가 느끼는 부조리한 감수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3회에 걸쳐 말하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며,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현실적인 해결 방안보다 개발자가 갖춰야할 태도에 더 집중했기에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조리한 감수성이 심각한 점은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일컬은 ‘절망’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개발자에게 있어 절망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개발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또한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개발자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버린 이들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떤 결정적인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메테우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주신인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줘 이로 인해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돼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 또한 부조리한 감수성을 느낀 존재입니다. 그의 간을 쪼여 먹는 독수리는 부조리한 현실이고, 포박 당한 쇠사슬은 존재 이유(개발자에겐 개발자로서 삶의 이유일 것입니다)의 부재입니다.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바로 개발자로서 겪는 부조리한 현실과 감수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겪은 반복되는 고통은 그가 신에게 등을 돌리고 인간 편에 서서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쳐줬다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첫 번째 상징인 ‘휴머니즘’이 있었습니다.

개발자 또한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요? 밤샘과 야근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현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개발에 대한 열정을 갖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고통에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발자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개발자가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형상화되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이롭게 쓰인다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개발자가 느끼는 고통조차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발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Program)의 Pro는 '미리, 먼저(before)"라는 의미이고, gram은 '쓰다(write)‘를 뜻한다고 합니다. 어원적으로 ‘미리 쓰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공교롭게도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개발자로서 ‘살아야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음의 대한 1차적인 해답은 행복한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저는 행복한 프로메테우스로서 개발자의 행복한 모습을 봅니다.

"Just for fun(단지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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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Posted 2008/01/09 18:34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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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말 이후 지금까지 줄곧 IT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IT 기술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마치 빌 게이츠가 언급한 ‘생각의 속도’로 변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해야 할까요. IT 종사자라면 누구나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한번쯤은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혹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변화에 속도에 맞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제 자신과 제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의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생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사회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문명이란 것에 이제는 스스로 발목 잡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빠르게. 좀 더 빠르게 살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한다”라고 말합니다.

기술과 문화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새로운 신기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만큼 우리는 날이 갈수록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이든 타이든 그 변화의 속도에 합류해 그 속도에 맞추거나 앞서나가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이지요. 하지만 그 빠름에 비례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잊습니다. 전통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이라든가. 인간적인 것들 즉, 삶의 진정한 가치라고 여겼던 소중한 모든 것들에 대해 말이지요. 왜냐하면 빠른 변화의 속도로 인해 우리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하루를 마감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저는 '느림'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되찾아야할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는 ‘느림’은 이제 너무나 힘든 속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합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고즈넉한 풍경 아래에서 천천히 산책하고, 어느 낯선 벤치 위에 앉아 마음에 드는 책의 페이지를 펼쳐본다. 그러면 내가 속한 세계는 얼만 퇴색해 보일까.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것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이 게으르게 산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그것은 물리적 시간의 빠름과 느림이 아닌 주체적인 속도 즉, ‘나의 속도'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만의 삶의 방법과 태도를 찾아나가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마냥 허겁지겁 질주해 오지 않았나요? 어쩌면 우리는 IT 속도에 맞추어 빨리 가려고만 했지 제대로 가려고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나가려는 사람이 돼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빠르냐 느리냐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in Experience Elegy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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